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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읽기] 담백한 사진 + 오랜 여운, JR청춘열차

정진영 전문기자

2015.06.01

조회수 11823

#1. 벌써 사흘이나 TV를 보지 않았습니다

철길을 원근감 있게 찍은 사진 한 장에 ‘벌써 사흘이나’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는 한 문장이 전부입니다.

광고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도, 눈길을 끄는 부분도 없습니다. 일본 철도 JR의 청춘열차 시리즈 광고입니다.

현란한 광고가 넘치는 세상에서 가끔 이렇게 담백한 광고를 보면 오히려 멈추고, 보고, 읽게 됩니다.

철길로 시작된 JR의 청춘열차 광고는 청년들에게 기성세대가 들려주고 싶은 말들을 담았습니다.

이 꾸밈없는 사진을 보면서 한 줄의 짧은 카피를 천천히 읽어봅니다. 스무 살, 서른 살을 지나 벌써 중년으로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이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을 지나고 있는 청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입니다.

디지털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는 기회가 줄어듭니다.

젊은이들이 직접적인 경험 대신 눈으로 보고 대리만족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의 체험으로 세상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 줄의 광고 문구에 잘 드러납니다. 


#2.역에 도착한 열차로부터, 고교생의 내가 내려왔다.
이번에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주는 사진입니다. 그저 기차역 플랫폼의 한 부분을 담은 사진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역에 도착한 열차로부터 고교생인 내가 내려왔다는,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기 부끄럽고 민망한 말 한마디로 여행에 대한 충동을 불러일으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한 마디 카피가 일상에 묻혀 싱그러움을 잊고 지내는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순수할 수 있었던 어느 시절로 시선을 돌려 자신을 되돌아보라고 손짓을 건네는 듯합니다.

현재 겪고 있는 고등학생들에게 보이면 피식 비웃고 말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십 대를 지나 오십 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들이 이 광고를 본다면, 잠깐 발걸음을 멈출지도 모를 일입니다. 





#3.아아, 여기다 싶은 역이 분명 있다.
JR의 청춘열차 시리즈 광고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장면을 꼽으라면, 이 광고를 선택할 것입니다. 루이스 쌔커의 청소년 소설 <구덩이>에는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아니면 운명에 의해서든 종종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놓이게 된 것이 아닐까? 의심해 보게 될 만큼 고통스러운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는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고 “여기다!” 싶은 순간이 있기도 합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하면서 “아아, 여기다”하는 순간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광고는 편안하고 차분해지는 순간을 선물할 것입니다. 


#4.무심코 내려버린,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광고 속 질문을 다시 드려보겠습니다. “무심코 내려버린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지금은 사라졌지만, 경춘선 기차는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낭만열차 구실을 했습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도심에서 벗어나 강과 산 사이로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어느 역에서 내려도 서울에 2시간 이내에 되돌아올 수 있는, 그리 넓지 않은 지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다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기 그리 어렵지 않은 공간이었습니다.

마음이 답답한 날,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멀리 떠나지 못해 아쉬울 때 ‘춘천 가는 기차’는 젊은이들의 해방구가 되어 주었던 때가 있습니다. 물론 어느 기차에서나, 언제 어디서나 무심코 내려버릴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5.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소중한 것이 있는 사람에게
기차를 타는 사람들에게, 그것도 기차로 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빨리 도착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사진 속 풍경처럼 농촌마을의 작은 역에 도착하려는 사람에게 속도는 고려대상이 아닙니다.

천천히 시간을 음미하는 여행이라면, 간이역에 내려 오후 해살을 실컷 쬐는 그런 한가로운 시간을 배려한 여행이라면 빠른 속도는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니까요. 여행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광고가 반가운 이유입니다. 



#6.때로는 옆길로 새는 것만 해 본다.
젊은이가 젊은이다울 수 있는 것은 용기 있게 자신의 길을 걸어보고자 할 때입니다. 생물학적 나이 따위는 상관없습니다. 젊은 마음으로 살아야 젊은이입니다.
여덟 살 때부터 기성세대가 정해준 길을 따라 스펙을 챙기며 이십 년을 보내고 나면 진짜 청춘답게 살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옆길로 새보기도 하면서 자기만의 인생을 살아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아는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생각해 보는 여름이 되면 좋겠습니다.


글_정진영 전문기자​